[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 김명환 안드레아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9월 22일 (목요일 Day 1: Porto – Mindelo)

Porto 에서 시작하는 카미노는 해변을 따라 걷는 길과 내륙으로 걷는 원래의 길이 있다.  우리는 경치가 좋다는 해변길을 택했다.  해변길은 대부분 순례자들이 시내에서 전철을 타고 Matoshimos로 와서 시작한다.   번잡한 시내를 걷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가에 위치한 Matoshimos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이 보이는 깨끗한 도시였다.  Porto 지역의 제일 좋은 레스토랑들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오늘은 첫날이라 17km 정도만 걷기로 했다.  해변가를 따라 깨끗한 아파트/콘도가 늘어서 있고 걷는 길도 널찍하다.  상당히 선호 받는 주거지일 것 같다.  주중인데도 산책나온 사람들, 달리기 하는 젊은이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날씨가 좋은 편이어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맛이 좋다.  군데 군데 좋은 모래의 비치가  있어 여름철이나 주말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다.

  

오늘 걷는 17km 의 대부분에 walkway를 만들어 놓아 걷기도 편하고 해변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Walkway 에서 특별히 주목할만한 지점에는 설명서가 세워져 있었다.  로마시대에 생선을 염장하던 돌로 만든 탱크가 신기했다.  3-4 세기에 사용되었다는데 소금에 절여진 생선은 통조림으로 보관되었다고 한다.

  

Walkway 곳곳에 café 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베낭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10km 정도를 가니 café 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이 띄엄띄엄 눈에 보였다.  포르투갈 길이 불란서 길 다음으로 싼티아고 순례자가 많고 대부분 Porto 에서 시작한다고 하는데 순례자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직은 절대적인 숫자가 적은 모양이다.  그냥 경치 좋은 해변가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작은 성당이 있어 순례길임을 일깨워 준다.

구글에서 점심 먹을 곳을 찾으니 생선구이를 잘 한다는 집이 나온다.  해변가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웨이터가 영어도 잘하고 친절했다.  고등어와 정어리 (sardine) 구이를 주문했다.  이곳의 고등어는 우리가 ‘아지’라고 하는 종류다.  와인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생전에 아지를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미국에 오신 다음에는 쉽게 구할 수 없어 별로 드실 수가 없었는데.

 

이곳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지 fish house나 어구를 쌓아 놓은 곳을 여러군데 볼 수 있었다.  Fish house는 밝은 단색으로 칠을 해 놓아서 눈에 잘 띄고  관리를 잘 해서인지 깔끔하고 전체 색조화도 괜찮았다.

 

오후 4시경 어제 예약해 놓은 Mindelo의 숙소를 찾았다.  오늘 우리가 묵는 이곳은 숙박 시설이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아파트의 방과 거실을 빌려주는 곳이  Booking.com 에 나와 있어 예약을 했다.  찾아가 보니 주인 여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방을 빌려 주는 것이었다.  Booking.com 에는 2인이 묵을 수 있게 twin size bed 와 sofa bed 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주인 여자는 둘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단다.  둘을 모두 쓸 경우는 10유로를 더 내라고 한다.  침대가 따로 필요한 우리는 둘을 모두 쓸 수 있는 것처럼 되어 있는 웹싸이트를 보여 주었다.  주인 여자가 Booking.com에 전화를 해 도움을 구하니 웹싸이트 설명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방값은 우리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서로 반씩 손해 보자고 5유로를 더 지불했다.  Booking.com 같이 큰 회사가 이렇게 작은 액수를 가지고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나와 sunset을 보러 해변가로 나왔다.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해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나온 김에 물도 사고 저녁도 먹고 들어 가려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관광지 기분이 나는 해변가가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가는 레스토랑으로 가고 싶어 마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심가가 나오지 않아 계속 걷다가 주택가 가운데 자리잡은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갔는데 웨이터가 짧은 영어로 chicken 과 fish 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chicken 을 시켰다.  바삭하게 잘 튀겨진 chicken wing이  appetizer로 나온후  main dish의  chicken은 재료가 떨어졌다며 일인분만 가져왔다.  오늘 점심을 많이 해서 다른 것을 시키지 않고 그것을 나누어 먹기로 했다.  맛이 있었다.  식사후 레스토랑에서 만든 디저트를 주겠다며 조금씩 가져 왔는데 그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계산서에는  chicken  두 사람분과 디저트 하나가 청구되어 있었다.  서비스로 주는줄 알았던 디저트는 우리가 잘못 알았나보다 하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chicken은 실수가 분명하다.  웨이터에게 이야기하니 이 아저씨 하는 말이 자기가 물값은 청구하지 않았다며 마치 별걸 다 따진다는 듯한 말투다.  새로 가져온 계산서는 chicken을 하나로 줄인 대신에 물 두개, 디저트 두개로 청구를 했다.  서비스로 주겠다며 가져온 조그만 디저트가 하나에 2.5유로다. 아마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바가지를 씌울 생각이었던 것같다.  처음 계산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자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맛있게 먹고 뒷맛이 씁쓸했다.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오는데 포르투갈 말을 못하는 손님 한 팀이 새로 들어와 앉아 있다.  웨이터가 메뉴를 영어로 설명하며 “chicken or fish” 라고 한다.  분명히 조금전 우리에게 chicken 재료가 떨어졌다고 했는데.  아주 fishy한 집이다.  숙소에 와서 Google을 찾아보니 그 집이 나오기에 오늘 저녁에 일어난 사건을 review에 올렸다.  혹시라도 다른 여행자들에게 경고가 되었으면 해서였다.  나중에 보니 Anne도 거의 비슷한 review를 올렸다.  포르투갈에서 처음 올린 review 가 나쁜 것이었지만 두번째는 오늘 점심 먹은 곳을 찾아 별 5개를 주고 음식과 서비스가 좋았다고 멘트해 주었다.

 

9월 23일 (금요일 Day 2: Mindelo – Sao Pedro de Rates)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거뜬하다.  카미노 첫날의 피곤은 잘 회복된 것같다.  아침 8시쯤 출발을 했는데 날씨가 쾌청하다.  이런날 아침에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해가 뜨며 온 우주가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 기운을 걸으면서 몽땅 받는 것 같다.  해변따라 만들어 놓은 walkway 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도 15km 이상이었으니 상당한 거리를 walkway로 설치해 놓은 것이다. 

5km 를 걸어 Villa de Condo 에 도착했다.  인구 80,000의 상당히 큰 도시다.  Porto 에서 전철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그 도시권에 속하는 모양이다.  시내로 들어가니 마침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Lisbon 이나 Porto 의 시장보다 훨씬 활기 있었다.

시장 옆의 café 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아침을 먹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아침으로 쌘드위치를 파는데 커피와 함께 하면 잘 어울린다.  치즈나 햄, 계란등을 빵 사이에 넣어서 팔고 있다. 

아침을 먹고 Matriz 성당에 들렸더니 고해 성사를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신자들이 신부님 두분에게서 성사를 보고 있다.  분위기가 엄숙해서 성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당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성당을 나와 이번에는 이슬람 사원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Capela do Soccoro 로 갔다.  강가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성당인데 마침 열려 있었다.  둥근 내부의 벽에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타일로 표현해 놓았다.

소성당 옆에는 선박 박물관이 있었는데 닫혀 있었다.  박물관 아래쪽 강에는 박물관에 속한 실물 크기의 배가 있었다.   이곳은 포르투갈의 해상 탐험시대에 조선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제 Santa Clara 수도원을 둘러 보고 도시를 빠져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시 시장에 들려 토마토와 자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일을 샀다.  우리는 베낭 무게를 생각해 두개만 집었는데 주인 할머니는 50전을 받으며 큰것 두개를 더 얹어준다. 

Santa Clara 수도원이 있는 언덕에는 1705년에서 1714년 사이에 지은 상수도 시설 (aqueduck) 이 잘 보존되어 있다.  4km 떨어진 수원지에서 이곳 수도원까지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기둥이 모두 999개나 되는 포루투갈에서 두번째로 긴 상수도 시설이었는데 시내에서 올려다 보는 aqueduck 풍경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수도원은 지금은 양로원으로 개조해서 쓰이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려고 나와서 앉아 있는 노인들도 많고 찾아온 가족들도 보인다.  옆에는 큰 묘지가 있는데 장례식이 거행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큰 성당은 문이 닫혀 있고 양로원 옆의 소성당만 열려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문앞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즐기던 노인이 도장을 받겠냐고 묻는다.  우리가 건네준 순례자 패스포트를 받아들고 한참동안 무어라고 쓰신다.  그분의 정성이 담긴 손으로 쓴 도장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상수도 시설은 올라와 보니 오히려 아래쪽에서 보던 것 보다는 작아보였다.  그래도 수십 미터 높이로 일렬로 곧게 세워져있는 시설이 아주 독특한 멋이 있었다.

   

수도원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시내가 참 평화스럽다.  Ave 강을 끼고 있는 이 도시는 잠깐 지나치지만 활기 넘치고 클래스가 있는 곳이라는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시내를 나와 카미노 길을 찾는데 화살표가 불분명하여 혼동된다.  이럴때는 Google Map 이 많은 도움을 준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야할 길안내가 잘 나오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갈 위험은 없다. 

Fatima 에서 버스를 타고 Porto 에 올 때 많은 포도밭을 보았다.  Porto 가 와인 산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Porto 바로 북쪽인 이곳은 옥수수 밭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뜨인다.  그 많은 옥수수를 어디다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빵 만드는데 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목축을 많이 하는것 같지도 않으니 사료로도 별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

Porto 에서 택한 카미노 해변길은  Arcos 에서 내륙길과 다시 합쳐진후 Sao Pedro de Rates 에서 다시 해변길로 갈라진다.  여기서부터는 원래 카미노인 내륙길을 걷기로 했다.  이 분기점이 정확히 표시되지 않아서 잘못하면 해안길로 빠지기 쉽다고 가이드 북이 경고를 했는데도  나는 그 해안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Anne 이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으면 엉뚱한 길로 빠질뻔했다.  가이드 북을 두번이나 읽었지만 기억을 못하는 거다.  

Porto 북쪽의 싼티아고 순례길은 파티마 순례길과 겹친다.  방향만 반대일 뿐이다.  곳곳에 노란색  싼티아고 순례길 표시와 파란색 파티마 순례길 표시가 서로 반대방향을 가리키며 새겨져 있다.

   

오늘은 Sao Pedro de Rates 에서 묵기로 했다.  마을 입구에 싼티아고의 동상이 있었다.  배에 모자를 대고 있는 모습이 먼 곳에서 볼 때는 행복한 배불뚝이 부처상처럼 보였다.

 

가이드 북에는 알베르게만 나와 있었는데 오기 직전 구입한 앱에 새로 생긴 casa rural (민박집) 이 있어 어제 저녁에 전화로 예약을 했다.  전혀 영어는 안 통하고 주인이 스페인어도 한다는데 내가 쬐끔 알고 있던 스페인어를 그사이 거의 다 잊어버려 두 사람 예약이 잘 되었는지 자신이 없었다.  가서 보니 조그만 침대가 하나인 방만 있어 포기하고 알베르게로 갔다. 

알베르게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걸으며 본 순례자는 열명도 안 되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반대쪽에서 오는 파티마 순례자도 있어 보인다.  이층 침대의 아래쪽에서는 내가 자고 Anne 이 위에서 자기로 하고 베낭을 내려 놓은후 샤워와 빨래를 했다.  빨래를 잘 널어 놓고 이곳 성당을 찾아 갔다.  성당은 로마시대에 이교도 예배 장소로 쓰였던 곳에 지었다고 하는데 제대 뒤가 돔으로 되어 있는 간결한 형식이었다.   이 성당의 주보 성인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이곳 사람인데 야고보 성인 (Santiago) 이 전교하러 왔을 때 성인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곳 이베리아 반도에 새로 세워지는 교회의 반석이 되라고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워주셨을 것 같다.  성당과 이 지역에 대해 포르투갈어와 함께 영어로 설명한 안내서가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문 받는것부터 음식 서빙, 계산서 처리등 모든 것이 느린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느라 한시간 이상을 보내고 알베르게로 돌아 왔다.  알베르게 앞의 길이 큰 길도 아닌데 차가 자주 다녀 꽤 시끄럽다.  포르투갈 길의 특징인 coble stone 으로 포장되어 있어 차 다니는 소리가 더 요란하다. 

이 지역 길들은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없는 좁은 길이다.  그런데도 차들이 상당히 빨리 달리기 때문에 걸으며 위험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coble stone 위를 걷는 것은 아스팔트위를 걷는것 보다 훨씬 다리에 부담을 준다.

 

9월 24일 (토요일 Day 3: Sao Pedro de Rates – Barcelos)

포르투갈 길에서 보낸 첫 알베르게의 경험이 B 학점은 되었다.  Bed나 샤워,  kitchen등 시설도 괜찮고 직원들도 친절하였다.  그러나 밤에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고 내방에 같이 묵은 독일 여자들 중에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이 둘이나 있어  잠드는데 힘들었다.  작년에 내가 묵은 알베르게의 같은 방 사람들도 나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작년에 카미노를 다녀와 코고는 것을 예방하는 mouth piece 를 알게 되어 지금은 잘 쓰고 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다. 

알베르게에서는 모두 일찍 일어나고 일찍 떠난다.   어제 시장에서 산 토마토로 아침을 해결했다.  토마토가 상당히 짭잘했다.  아마 일부러 그렇게 키운다는 짭잘이 토마토였던것 같다.  

오늘 카미노에는 최근에 지어진 것 같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집들이 많았다.  역시 대부분이 약간 계단을 올라가서 집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농사는 역시 옥수수가 대세이다.  닭이나 오리를 마당에 기르는 집들도 자주 보이고 방목하는 양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오랫만에 보기좋은 들꽃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7km 를 걸어 café 에 도착했다.   이집은 안토니오 가족이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는데 가이드 북에 소개되어 있고 동호회 패이스 북에도 자주 나와 포르투갈 길 순례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손님 대부분이 어제 알베르게에서 묵은 사람들이다.  오랫만에 오믈렛으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곳부터는 본길을 벗어나 Franqueira 산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가이드 북 소개에 의하면 조금 멀고 오르막 길이지만 정상에 18세기에 지은 전망 좋은 소성당이 있고 내려오면서 로마 시대의 성곽 유적과 수도원을 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여 어렵지 않았다.  소성당은 산 위에 아담하게 지어져 있는데 오늘은 결혼식이 있어서 내부를 잘 꾸며 놓았다.  하객들이 계속 차를 타고 도착하고 얼마쯤 지나니 신부가 도착했다.  쾌청한 날씨에 멋진 곳에서 결혼을 하는 신부 신랑을 위해 마음속으로 축원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가 좋았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오늘 우리가 묵으려는 Barcelos 같았다.

   

      

내려오면서 들린 로마시대의 성곽은 그렇다는 설명을 읽었으니 그런가보다 하였지 그냥 지나치면 돌무더기 담으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수도원은 문이 닫혀 있어 안을 볼 수 없었다.  

Barcelos 시내로 들어가려면 Cavado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의 남쪽에 있는 도시가 Barcelinhos 이다.  이름으로 추측하건데 여동생 도시인 모양이다.  이곳에 미국에서 사무용품을 파는 상점  STAPLES 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규모나 종류가 비슷했는데 혹시 포르투갈 특유의 용품이 있나 둘러 보았으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

Barcelinhos 에는 성 안드레아 성당이 있었다.  성 안드레아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성당은 흔치 않아서 반가웠다.  나의 영세명이 김대건 신부의 안드레아를 따랐기 때문에 성 안드레아는 영세명으로 보면 할아버지 뻘이 되는 셈인가?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Barcelos 로 들어가는 다리는 1328년에 지었다는데 이름도 Ponte Medieval 이다.  길지는 않지만 견고하고 안정감을 주는 다리다.

Barcelos 는 품위있는 도시였다.  도시의 중심 광장인 Campo da Republica는 크고 잘 손질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매주 목요일에 포르투갈에서 제일 큰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Tourism Office 에 들려 관광 정보와 도장을 받았다.  중세때 이곳을 출입하던 관문인 tower (Torre da Porta Nova) 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올라가 보았다.  깨끗한 도시가 한 눈에 한가로이 들어온다.

Tower 옆에 위치한 팔각형의 성당 (Templo do Bom Jesus) 은 1704년에 원래 있던 소성당 위에다 팔각형 돔 형태의 temple 을 증축하였다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매년 5월 3일 십자가 축제가 거행된다고 한다.  1504년 그 옆의 시장터에서 기적적으로 나타난 십자가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라고 하니 500년이 넘는 전통이 된 셈이다.

작년에 걸었던 카미노 불란서 길의 Santo Domingo 마을에 수탉(rooster)에 얼킨 전설이 있었다.    그곳 스페인의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한 독일인 부부와 아들이 싼티아고 순례길에 그 마을 여관에 묵었는데 여관집 딸이 아들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단다.  그 딸이 추파를 보내도 아들이 무시해버리자 베낭에 몰래 은그릇을 집어 넣고는 아들을 도둑으로 고발했단다.  아들이 교수형 선고를 받자 부모는 낙담했지만 그래도 싼티아고로 떠났다.  얼마후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던 부모는 아들이 교수대에 기적같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도밍고 성인이 개입을 한 덕분이었다.  부모는 그길로 재판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다.  저녁을 먹고 있던 재판관은 먹으려던 통닭을 가리키며 당신 아들은 이 통닭과 같은 처지라고 말하자 그 통닭이 벌떡 일어나 울었다고 한다.  이 기적을 보고 재판관이 교수대로 달려가 밧줄을 끊고 아들을 사면하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에는 Barcelos에 이 수탉에 얼킨 전설이 있다.  포르투갈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지역의 부자가 큰 파티를 열었는데 은그릇이 없어졌단다.  싼티아고 순례를 하고 있던 갈리시아 지방에서 온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교수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무죄를 주장하던 이 순례자는 죽기전에 재판관을 면담하고 싶다하여 만찬중에 있던 재판관을 보게 되었다.  그 순례자는 만찬 테이블에 있던 통닭을 가리키며 자기가 교수형에 처하면 그 닭이 울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줄거라고 선언했다.  모두들 비웃었지만 그 순례자가 교수형에 처해지자 통닭이 일어나 울었다 한다.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 재판관은 순례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석방해 주었다.  야고보 성인 (Santiago) 과 성모님이 보살펴 주어서 일어난 기적이라고 전해진다. 

포르투갈 전설은 스페인에 비해 재미없는 편인데도 이 수탉은 Barcelos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전역에서 국가적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같다.  리스본, Porto 등 어느 곳에서나 관광 기념품 상점에서 볼 수 있었다. 

   

점심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rack of grilled goat ribs을 했는데 염소 갈비를 LA 갈비 처럼 얇게 잘라서 구워 내왔다.  누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도 안 나고 상당히 연한 편이어서 맛있게 먹었다.

 

9월 25일 (일요일 Day 4: Braga)

오늘은 카미노를 걷지 않고 Barcelos에서 멀지 않은 Braga를 다녀 오기로 했다.  Braga는 인구 140,000 의 큰 도시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종교적 도시이며 가장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라고 한다.  포르투갈 길이 그곳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어 들려 보기를 가이드 북이나 선배 순례자들이 권장한다.  일요일이라 버스가 12시 30분에 출발하는 것 하나밖에 없어서  8시50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카미노를 걸으며 낯이 익혀진 사람들 십여명이 타고 있다.  기차에서 내려 시 중심가를 들어가는데 입구에 휘장을 쳐 놓은 것이 특이했다.

우선 대성당에 들려 표를 사서 성당 내부와 회랑을 둘러 보았다.  대성당은 1089년에 오랫동안 이곳을 지배했었던 Moors 의 이슬람 사원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포르투갈을 세운 왕의 부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벽면 장식과 높이 위치한 파이프 오르간이 눈을 끌었다.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제대와 중후해 보이는 성모상이 독특했고 책을 들고 순례하는 Santiago 상이 눈을 끌었다.

회랑에는 무덤이 많았는데 최근에 죽은 사람들의 무덤도 상당히 있었다.  살아있는 성당들은 묘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는 것 같다.

11시 30분 미사에 다시 오기로 하고 관광 안내소에 들려 도장과 관광 지도를 받았다.  미사후에 가기위해  Bom Jesus do Monte 에 가는 버스편도 알아 두었다.  Good Jesus of the Mount 라는 의미인 이곳은 포르투갈 성지인데 Braga 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이다.   

Braga 중심 광장은 예뻤다.  여러 가지 꽃으로 잘 단장해 놓았고 포르투갈 최고의 관광지 답게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었다.  관광 안내소나 시민들이 관광객들을 도와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군밤을 팔고 있어 한 봉지를 샀는데 맛은 별로였다.

 

근처에 로마시대 Bath House 가 있다 해서 미사전에 보려고 열심히 찾아가 보니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아쉬운대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성당 미사에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들도 전통 복장을 하거나 정장을 하여 엄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었고 성가대의 음악도 아름다웠다.  복사를 하는 남녀 아이들 여섯명의 열심한 모습도 대견했다.

서른살이 훨씬 넘어보이는 다운 증후군의 아들과 상당히 지적으로 생긴 엄마가 앞자리에 앉아 있다.  일어서고 무릎꿇고 다시 앉고 하는 카톨릭 미사 전례의 순서를 아들이 잘 따라하도록 엄마가 도와 주고 있었다.  일일이 게속해서 챙겨 주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평화로웠다.  고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평온할 수 있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종교안에서의 믿음일거라 생각했다.  종교가 주는 가장 큰 혜택은 처한 상황이 아무리 나쁘고 힘들더라도 그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신자에게 마음의 평온과 힘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큰 종교들이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는 사랑, 용서, 겸손등은 모두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마음의 평온을 얻고 살아가려면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이다.  근세에 이성주의가 팽배하여 신은 죽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을 때 곧이어 신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맥락이리라.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각자의 믿음과 체험에 따라 결정될 문제지만 신이 필요한가는 실존의 문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그 엄마의 평온한 모습이 아직도 마음안에 남아 있다.

Bom Jesus do Monte 는 Braga 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리면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까지 올라 갈 수 있다.  우리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고 걸어서 내려 오기로 했다.  1.2유로가 아깝지 않은  높이였다.   성당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제대 뒤에 재현해 놓았다.  두 명의 죄수, 성모님과 세명의 마리아 등이 함께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수난을 보며 그 의미를 묵상하게 만들었다.

 

성당 주변은 예수님의 공생활과 수난의 주요 장면들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산책로도 여럿 있고 보트를 타는 호수도 있다. 놀랍게도 호텔이 셋이나 있었다.  성지라기보다는 유원지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성당에서 내려오는 계단은 신약과 구약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석상을 세워 놓고 적절한 성서 구절을 인용해 놓았다.  하나씩 보면서 내려 오는 것이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Braga 시내로 다시 돌아와 로마 시대의 분수를 보러 갔더니 일요일이라 역시 열려 있지 않았다.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 관광지가 문을 닫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Barcelos로 돌아 올 때는 버스를 이용했다.  집과 상점이 많이 있었다.  조그만 규모의 아울렛도 많이 보이고 자동차 딜러등 상당히 규모가 큰 상점들이 있었다.  Barcelos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Scott과 Peggy 부부와 인사했다.  Seattle에서 온 그들은 리스본에서 카미노를 시작해 한 5일쯤 걷고 버스로 Braga 에 왔다가 이제 Barcelos 로 오는 길이란다.  이곳부터는 다시 걸을 계획이란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만날거라며 헤어졌는데 그후 다시 보지는 못했다.

저녁은 포르투갈 음식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생선 국밥’을 시켰다.  밥을 넣은 생선 스튜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쌀을 많이 사용한다.  생선이나 고기 요리를 시키면 french fry나 밥을 선택해 곁들이게 하는데 이 밥은 대체로 반 정도 익힌 설익은 밥이어서 우리 입맛에는 안 맞았다.  그런데 생선 스튜에 밥을 아예 넣어 끓여 나오는 이 생선 국밥은 도미로 만든 것과 새우로 만든 것을 먹어 보았는데 맵지 않고 시원한게 입맛에 잘 맞았다.

  

9월 26일 (월요일 Day 5: Barcelos – Ponte de Lima)

오늘은 34km 를 걸어 Ponte de Lima 까지 갈 계획이다.  호텔에서 checkout 을 하며 “두 사람이 묵을 침대가 따로 있는 방이 있느냐?” 라는 물음을 포르투갈 말로 어떻게 하는지 적어 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사용해야 할 필요에 대비를 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니 7시 50분이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는데 황소를 기르는 곳이 있어 신기했다.  스페인에 투우용으로 수출하기 위해 사육하는 것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다.  걷다 보면 집에서 염소, 닭등을 기르는 곳을 많이 본다.  규모로 봐서는 자체 소비가 목적일 것 같았다.  길옆의 작은 목장에서 소에 사료를 주는 방법이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마을들을 계속 지나는데 café 가 없다.  Barcelos 에서 3.4km 떨어진 Vila Boa에 하나 있었는데 아침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지나쳤었다.  그리고는  7km  이상을 걸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 북에는 그 사이에 둘이나 있는 것으로 나와 있어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Café 에 들리는 큰 목적의 하나는 화장실 이용인데 이럴때는 차라리 아주 집이 없는 편이 오히려 편리하다.  Tamel을 지나며 언덕 아래쪽에 기차역이 보여서 카미노를 벗어나 그 역으로 갔다.  역앞에 café가 있어 화장실을 이용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12km 이상을 걷도록 café 를 볼 수 없었다.  누군가 적당한 곳에 화장실 있는 café 를 차리면 주인과 순례자 모두에게 아주 좋을것 같다.

이 지역 역시 옥수수가 주요 작물이다.  그런데 옥수수밭의 가장자리에는 대부분 포도가 심겨져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완전히 포도나무만 심어 놓은 밭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포도는 부업인 모양이다.  이곳의 포도 나무는 키가 큰 편이어서 나무 아래에 채소를 심어 놓은 곳도 많았다.  Napa Valley 나 Porto, 그리고 작년에 스페인 와인 지역에서 보았던 낮으막한 포도 나무들과는 다르다.  테이블용인지 와인용인지 그 용도가 궁금했다.  포도 수확철이어서 사다리나 경운기 위에 올라서 포도 따는 광경이 자주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포르투갈의 이 지역이 Vinho Verde (green wine) 의 산지라고 한다.  요즘 인기가 있는지 Anne이 저녁 식사 때에 여러번 주문했는데 순하고, 신맛이 덜하고, 신선한 맛이었다.  색깔은 white wine에 가까운 것들이 많지만 red wine 이나 rose도 있어 다양했다.  Wikipedia 를 보니 포르투갈의 이 지역 (Minho) 이 산지이고 소규모 포도밭에서 생산하는데  2014년 통계에 의하면 포도밭이 19,000 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포도 나무의 키가 커서 나무 아래에 채소를 기른다고 한다.   Vinho Verde 는 글자 그대로는 green wine 이라 번역하지만 만든 다음 숙성을 오래 시키지 않고 출하하기 때문에 young wine 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또 밤나무도 많이 보인다.  카미노 길가에 가로수처럼 서 있는 경우도 있고 잘 익은 밤송이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경우는 흔하게 보았다.  군밤이외에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처럼 제사상이나 밥 짓는데 쓰일리는 없지만 밤을 이용한 pastry는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카미노를 걸으며 지금까지 보아온 포르투갈의 집들은 대부분 깔끔하고 윤택해 보인다.  흰벽에 빨간 기와 지붕을 한 집들이 많은데 대부분 잘 관리하고 있고 정원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가꾸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검정 기와를 얹은 지붕이 보이는데 그런 집들은 꼭 일본 주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상당히 가정적인 것 같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같이 놀아 주는 것을 많이 본다.  작년에 스페인을 걸으며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 5-6km 는 좀 힘이 들었지만 계획대로 Ponte de Lima 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자랑하는 곳이다.  강변을 따라 걸어 들어 가는 길에 오래된 가로수가 웅장하게 맞아 주고 있었다.

로마시대에 지은 다리를 1368년에 새로 고쳤다는 medieval stone bridge 가 우아하다.   조금전 지나친 현대식 다리와 잘 비교가 된다.  이 도시의 이름인 “리마의 다리”  (Ponte de Lima) 는 이 다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옛날 로마가 지금의 포르투갈 지역을 점령하며 계속 북으로 진격할 때 이곳 Lima 강에 와서 병사들이 강을 건너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 이 강이 전설에 나오는 River Lether 가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전설의 River Lether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강을 건너면 모든 기억을 잃어 버린다고 알려져 있었단다.  대장은 할 수 없이 자신이 먼저 강을 건너 간후 부하들 이름을 한 명씩 불러 건너 오게 했단다.   그후 로마는 이곳에 다리를 건설했다.

 

예전의 감옥을 개조한 Tourism Office 를 찾아 갔더니 문이 닫혀 있다.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오늘은 많이 걸었다.  가이드 북 지도상으로 33.6km 이니 적어도 35 km 는 걸은 셈이다.  작년에 걸은 불란서 길의 기록을 찾아보니 32 km (20 mile) 이상을 걸은 날이 한번도 없었다.

 

저녁을 먹으러 포르투갈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에 갔는데 중국식 두부/야채 요리가 메뉴에 있었다.  주문을 했더니 웨이터가 놀라는 표정이다.  아마도 거의 주문 받는 경우가 없는가 보다.  Vegetarian을 위해 하나 올려 놓은 메뉴 같은데 이 조그만 도시에 두부가 어떻게 공급되는지 궁금했다.  두부는 괜찮았는데 요리는 두부와 야채 볶음이 따로 놀았다.

9월 27일 (화요일 Day 6: Ponte de Lima – Rubias)

어제 많이 걸은 편이라 아침에 몸상태가 어떨까 걱정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Anne도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예방 차원에서 발바닥의 걱정되는 부분에 물집 예방 반창고를 붙였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는 foam roller stretching 을 더 열심히 했다.   오늘은 18km 로 비교적 짧은 거리다. 

8시쯤 나와서 bakery 에 들려 쌘드위치와 크로쌍 그리고 glau  (coffee with milk) 를 시켰다.  Coffee 를 예술적으로 만들어 주어 아침식사가 더 즐거웠다.

Bakery 건너편에 있는 은행이 9시에 문을 여는지 문앞에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연금이 나오는 날인가보다.  아침을 마친후  tourism office에 들려 도장을 받았다.  Ponte de Lima 에서는 매월 두번째 월요일에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엊그제 Barcelos 에서도 매주 목요일에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시장이 열린다고 했었는데.  하기는 이곳은 한달 마다 열리고 그곳은 주일마다 열리는 장이니 각자의 주장이 다 맞을 수도 있겠다.  1826년 국왕의 재가를 받아 매년 9월 두번째 주말에 열리는 Feiras Novas 축제에는 퍼레이드와 음악, 음식을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Medieval stone bridge 를 건너 시내를 벗어났다.  약간은 해적같이 생긴  Santiago 석상이 맞아 주고 있었다. 

      

이곳부터는 큰 도시의 외곽길 같지 않고 조그만 시골 마을길 분위기이다.  덥지 않은 맑은 날씨에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걷기가 상쾌했다.  이곳 좁은 시골길들은 땅을 파 내어 만들어서인지 한쪽이나 양 옆에 축대를 쌓아 낮은 흙담장처럼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담장 위에는 포도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는데 포도나무 너머는 물론 옥수수 밭이다.  가끔 길 양쪽의 포도나무를 아치 모양으로 연결해 놓아 그 밑으로 걷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이 포도 수확철이어서 주렁주렁 잘 익은 포도송이를 보며 시원한 바람에 풍기는 포도 냄새를 맡으며 터널을 걸을 수 있었다.  쉽게 맛 볼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포르투갈 길을 걸으며 만난 묘지들은 대부분 정성들여 가꾸어져 있었다.

10km 정도 걸어서 오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유일한  café에 도달했다.  여기서 목적지까지는 400m 고지를 넘어야 한다.  Café 에 들어가니 상당히 많은 순례자가 쉬고 있었다.  며칠전 만나 인사한 Canada 에서 온 동양 여자와 네델란드에서 온 Hung 이란 여자를 다시 만났다.  순례자가 많아지니 카미노를 걷는 기분이 더 좋아진다.

400m 고지는 중간 중간 가파른 부분이 있었는데 곳곳에 몸통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그 방법이 지리산 둘레길에서 본 고로쇠 채취에 비하여 상당히 원시적이다.  별로 위생적이지 않은걸 보니 식용으로 쓰려고 채취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걸으며 네델란드에서 온 Hung 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인도네시아에 살던 중국인인데 네델란드로 유학을 왔을때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단다.  외탁을 했는지 서양 여자 느낌이 강했다.   Ms. Hung 은 베낭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같았다.  2년 전에 불란서 길을 걸었고 작년에는 카미노 로마를 스위스에서 부터 걸었는데 이태리의 여러 지역을 지나는 것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카미노 로마 (Via Francigena: 프란치스코 길) 는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시작해서 불란서, 스위스를 거쳐 이태리의 로마까지 가는 순례길이다.  중세때에는 바티칸과 베드로/바오로 사제의 무덤을 방문하는 중요한 순례길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소수의 순례자만 걷고 있지만 (2012년에 1200 명으로 추산) 수도원이나 종교단체들이 점차 순례자를 위한 시설 확장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상당히 흥미가 생기는 정보였다.

정상에 도착하여 café 에서 사온 sandwich 로 점심을 했다.  쉴 수 있도록 벤치를 만들어 놓고 물을 보충하도록 수도물을 틀어 놓았다.  상당히 많은 순례자들이 쉬고 있었다.

 

오늘 목적지 Rubiaes 에 도착해 예약해 놓은 사설 알베르게에 들었다.  우리방에는 침대가 넷이 있는데 오전에 café 에서 본 카나다의 동양여자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샤워와 빨래를 마친후 마을로 걸어가 이곳의 유일한 레스토랑에서 이른 저녁을 했다.  손님 모두가 순례자들이었다.  

오늘은 아주 한가한 날이다.  가끔은 이런 날이 필요하다.   알베르게에는 개를 두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순레객들이 모두 귀여워 해준다.  마당에 있는 소파는 이 녀석들 차지여서 누워 자던가 그렇지 않으면 장난치는 놀이터이다.  순례객 방에도 무작정 들어와 침대 위에서 장난을 치며 놀기도 한다.  혼나거나 야단을 맞아본 적이 없는듯한 개구장이들이었다.

 

As the deer(목마른 사슴)

As the deer panteth for the water
So my soul longeth after Thee
You alone are my heart’s desire
And I long to worship Thee

You’re my friend
And You are my brother
Even though You are a King
I love You more than any other
So much more than anything

You alone are my strength, my shield
To You alone may my spirit yield
You alone are my heart’s desire
And I long to worship Thee

I want You more than gold or silver
Only You can satisfy
You alone are the real joy giver
And the apple of my eye

You alone are my strength, my shield
To You alone may my spirit yield
You alone are my heart’s desire
And I long to worship Thee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편이 계속 연재 됩니다.

교우 이야기 보내주실곳 :
[email protected] (홍보부)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Camino Portuguese 김명환 안드레아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2015년 봄에 싼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을 걸었다.  한 석달쯤 지나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걸은 프랑스 길 (Camino France)을 다시 걷기보다는 북쪽 길 (Camino Norte)이나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에 흥미를 느꼈다.  가이드북을 사서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그곳을 걷고 있거나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는 포르투갈 길로 결정했다.  새로운 나라를 경험할 수 있고 Port에서 시작하면 거리도 (242km) 적당했다.  시기는 2016년 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싼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순례를 시도하는것 같다.  동호회 페이스북을 보면 다시 걸을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두 세번이상 걸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생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가 보다.

그런데 순례를 마친 그해 가을 한국에 나갔을 때 설악산, 북한산과 서울시 둘레길, 성곽길을 여기 저기 다니며 즐겼는데 다리와 무릎을 과용한 모양이었다.   무릎이 아프고 허벅지가 땅겨 매일 저녁 식사후 걷던 3km 정도의 산책도 할 수 없었다.  수영장에서 다리운동을 하고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으며 약간 나아졌지만 봄이 되었는데도 아직 집앞 산책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Gym에서 만난 트레이너가  Foam Roller를 이용한 스트레칭과 무릎을 튼튼하게 만드는 몇가지 운동을 가르쳐 주었다.  그 스트레칭은 나에게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Foam Roller를 집에 비치해 놓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편리하고 여행용도 있어 어디든 갖고 다니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7월쯤 되니 많이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걷는 것이 부상을 악화 시키지 않고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통증을 느끼더라도 회복되는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8월부터 카미노를 염두에 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에 15km 이상을 며칠동안 연달아 걸어 보고 무릎과 다리를 조심해서 살펴 봤는데 모두 잘 버텨주었다.  연습 하이킹에 몇번 따라 나선 딸아이가 (Anne) 자기도 카미노를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의 싼티아고까지이며 전 구간이 614km 이다.  John Brierley의 가이드북은 이 구간을 23일에 나누어 걷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포르투갈의 Porto나 (242 km)  스페인의 Tui에서 (117km)  시작한다.  카미노를 걸었다는 수료증은  Tui 부터 걷기 시작해서 싼티아고에 도착하면 받을 수 있다.   포르투갈 길은 카미노 싼티아고 가운데 두번째로 순례자가 많은 길이지만 전체 수료증 발급의 13% 정도이니 70% 이상을 차지하는 프랑스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한가한 편이다.

우리는 리스본에서  Porto까지의 여정은 버스로 움직이고  Porto부터 걷기로 했다.  Porto까지는 옆지기도 동행해서  Lisbon에서 3박,  Fatima와  Tomar에서 각각  1박,  Porto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9/14/16 (수요일 Day -8: San Francisco – Paris )

파리행 비행기가 오후 2시 50분 출발이어서 집 안팎으로 챙길 것들을 여유있게 다 돌아보고 10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나무에 물을 더 효율적으로 주기위해 며칠전에 새로 설치한  drip system이 시간 조절이 잘 안 되어 어제까지 씨름했었는데 아침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다.  집을 비우고 떠날 때는 항상 불안하다.  일단 떠나고 나면 잊어 버리는데. 

공항으로 가면서 walking stick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나는 스틱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언덕을 오르고 내릴 때는 체력 소모도 줄여주고 균형을 유지해 주어서 넘어지는 것도 방지해준다.  그런데 가져 가는 것이 문제다.  비행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면 제일 간단한데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각 나라 공항의 경비 담당자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  일단은 체크인 화물로 부칠 준비를 했지만 그러면 파리 공항에 도착후 찾아서 리스본으로 가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에 다시 부쳐야한다.  저가 항공사는 대부분  $30 – $40 정도의 요금을 부과한다.  비용도 들고 상당히 번거롭다.  카미노를 끝내고 올 때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작년에 프랑스 길을 마친 다음에는 싼티아고에서 우편으로 부쳤는데 포장하고 부치는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내린 결론은 그곳에서 싼것을 사서 쓰다가 버리고 오는 것으로 했다.

9/15/16  (목요일 Day -7: Paris – Lisbon)

비행기에서 잠을 3 시간 이상 자고 나니 기분이 좋다.  비행기는 정시에 샤르 드골 (CDG) 공항에 도착했다.  리스본으로 가는 Portugal Airlines (TAP)은 파리 시내 건너편 OLY 공항에서 출발한다.  그곳으로 가려면 기차로 한시간 이상을 달려  Anthony 역에 내린 다음  OLY 공항으로 가는  Tram을 타고 6분 정도 가면 된다.  기차 요금이 10유로이고 Tram 요금이 9.3 유로이다.  공항과 관련되면 모두 비싸진다.

OLY 공항은 규모가 작지만 깨끗하고 편리했다.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TAP 카운터는 운영이나 시스템이 느리고 낡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카운터 직원 역시 바쁠것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기내 서비스는 훌륭했다.  승무원들은 친절하고 한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시간인데도 쌘드위치와 와인 써비스를 했는데 수준급이었다.  리스본 공항은 시설이 빈약한지 아니면 수리중인지 터미날 게이트에 비행기를 대지 않고 외곽에서 트랩을 내려와 버스로 이동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그런것 같았다.  

우선 공항안에 있는 Vodafone 판매소에 들려 전화 sim card를 사서 갈아 끼웠다.  1G data와  5유로 가치의 전화를 할 수 있는 카드가 15유로였다.  작년에 스페인에서 샀던 Vodafone 카드에 비하면 상당히 조건이 나쁜편이다.  같은 회사라도 나라마다 많이 차이가 난다.

나는 외국의 큰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는 그 도시에 관한 Wikitravel 기사를 읽어 본다.  볼 곳, 할 것, 먹을 것(곳) 등 이외에 조심할 것(곳) 등을 상당히 정확하게 알려 준다.  리스본 공항에서는 택시 운전기사가 바가지를 잘 씌운다는 경고가 있었다.  밤 9시가 되었고 일행도 셋이니 택시를 타면 편하겠는데 망서려졌다.  공항 안내소에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고 한다.  솔직하게 알려 주어 고마웠다.  Metro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그래도 공항이 도심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호텔방에 짐을 두고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구글에서 찾은 곳을 가보니 30분후에 문을 닫는다며 새 손님을 받을 수 없단다.  그 근처를 살피다가 포르투갈 음식을 한다는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갔다.  길에 호객하는 종업원이 나와 있고 들어가니 여러명의 종업원이 맞아주어 관광객 상대의 식당같아 잘못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모두 인상이 좋아 보였다.  Vegetable soup과 문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soup도 구수했지만 큼직한 다리를 연하게 제 맛을 살린 문어 구이는 아주 훌륭했다.  특히 곁들여 나온 감자는 알맞게 잘 익어 맛과 식감이 모두 좋았다.  이 집에서는 Fado를 했다.  처음에는 다른 손님이 없어 우리만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약간 불편했는데 로칼들이 2-3명씩 들어와 앉기 시작하고 주방의 chef도 나와서 같이 들으며 꽤 좋은 목청으로 따라 부르기도 하니 분위기가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후 열명이 넘는 단체가 들어와 자리잡으니 우리 가족 셋만 있을때 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물론 가수들도 노래할 맛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50대 남자 2명이 반주를 하고 여자 가수 둘과 남자 가수 둘이 번갈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가수들 모두 정말 진지하게 노래에 빠져 있었다.  아주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선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슬프고 한이 맺힌듯한 노래도 있고,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노래도 있다.  창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정서적으로 코드가 맞는 음악이었다.  빠져들어 즐길 수 있었다.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9/16/16 (금요일 Day -6: Lisbon)

어제 알러지 약을 먹고 자서인지 아침  8시까지 한번만 깨고 푹 잤다.  가족들이 곤하게 자고 있어 조용히 나와 호텔근처를 둘러보았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Café들은 간단히 아침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런데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담배 연기를 피하기 힘들다.  내가 다녀본 어느 도시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외에서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한 규제가 아직은 없는 모양이다.  호텔에 돌아와 슈퍼마켓을 알아보고 물을 사왔다.  5리터 물 한병에 0.45유로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게 싸다.  어제 저녁 식사도 질이나 양, 써비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포르투갈의 물가가 상당히 싼것을 느낄 수 있었다.

10시 정도까지 잘 잔 가족들과 함께 11시쯤 호텔을 나서서 시내로 나왔다.  Santa Justa Elevator가 보여 우선 타기로 했다.  1902년에 세워진 이 Elevator는 높이가 수십 미터 차이나는 언덕 위와 아래의 길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기다리는 사람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굳이 기다려 탈 가치가 있을까 망설이는데  다행이 두대의  Elevator를 모두 운용하기 시작했는지 줄이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Elevator는 수동식으로 운영하고 탑승 인원을 제한해 편안하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위에 내려서 바라보는 리스본 시내의 전망이 좋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과 타는 시간의 비율은 디즈니 랜드의 인기있는 놀이기구 보다 훨씬 나쁜편이다.

Elevator에서 내려 나오는 길에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예전에 카멜 수도원이었던 곳이다.  수도원의 주요 건물들은 1755년 대지진 때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는데 당시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페루의 16세기 소녀 미라가 눈에 들어왔다.

 

포르투갈에서는 타일 (azulejo)을 많이 쓴다.  건물의 외장제로도 흔히 쓰고 내부의 벽도 타일로 꾸며 놓은 경우가 많다.   큰 건물의 내부 벽으로 쓸 때는 주로 역사적 사건이나 성서의 이야기를 담아 놓는다.  잘 디자인된 타일로 치장한 건물은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든다.

리스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 있다.   Livraria Bertrand는 1732년에 개점한 곳에서 아직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50개 이상의 지점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에서 제일 큰 서점 체인이다.  리스본도 그렇고 나중에 걸으며 들린 도시에서도 서점들은 자주 눈에 띄었다.  아직은 인터넷 서점의 세력이 약한 것인지 아니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편리함보다는 전통적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지 알수 없다.

점심을 먹고 Tejo 강가에 있는 중심가인 Baixa 지역에 들렸다가 대성당으로 갔다.  Baixa 지역은 1755년 대지진 이후 완전히 새롭게 계획해서 개발되었단다.  도시 계획에 18세기 계몽주의 이상을 잘 반영시켰다고 한다. 

리스본은 어떤면에서는 짝퉁도시이다.  1966년에 지은 “4월25일 다리”는 쌘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꼭 빼닮았고 1959년에 세운 Christ the King (Cristo Rei) 성상 역시 브라질 리오에 있는 Christ the Redeemer (Cristo Redentor) 에서 영감을 받고 시작했다고 한다.  Cristo Rei는 다리에 비하면 덜 짝퉁이지만 아무래도 독창성이 부족하여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는것 같다. 

대성당에서 순례자 패스포드를 사고 첫번째 도장을 받았다.  리스본 대성당은 싼티아고 순례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의 공식 출발점이다.  공식 출발점에 들려 도장까지 받으니 이곳부터 걷기를 시작하지 않는 아쉬움이 약간 위로가 되었다.

대성당에서 나와 바로 아래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에 들렸다가 언덕 위에 있는 Sao Jorge 성으로 갔다.  Moors (아프리카 북서부의 회교도) 가 지배 하고 있을 때 지은 견고한 성으로 리스본의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Tram 28 을 타고 가고 싶었지만 그시간에는 너무 만원이고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버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경고에 옆지기와 Anne은 Tram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씨 속에서 선선한 바람을 받으며 성벽위에 서서 바라보니 햇살을 받고 있는 리스본의 중심가와 Tejo 강의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성벽에 걸터 앉아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간이 술집과 무궁화와 너무 닮은 멋진 나무를 배경으로 테이블을 설치해 놓은 café 가 손님을 끌고 있었다.

저녁은 어제 너무 늦어 들어 갈 수 없었던 레스토랑에서 했다.  Seafood를 주로 하는데 구글의 높은 평점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9/17/16 (토요일 Day – 5: Lisbon)

아침겸 점심을 Farmer’s Market에 가서 먹었다.  Lisbon의 최고 식당들을 한 지붕아래 모아 놓았다고 선전하는 food court는 규모가 크고 종류도 다양했다.  12시부터 여는 곳이 많은데 기다리고 싶지 않아 열려있는 곳에서 panini, pizza, soup 등 몇가지를 사다 먹어보니 맛은 기대 이하였다.  식품을 파는 farmer’s market 자체는 규모가 크지 않은걸로 보아 이곳은 food court가 중심인 것 같다. 

Farmer’s Market을 나와 버스를 타고 Belem 지역으로 갔다.  우선 Jeronimos Monastery를 보았다.  포르투갈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부강해진 16세기 초부터 짓기 시작하여 100년이 걸린 이 수도원은 화려하고 정교하며 규모가 장대하였다.  이 수도원을 시주한 King Manuel은 이곳의 수도사들에게 자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빌어줄 것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러 나가 있는 항해사와 선원들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단다.

 

성당도 리스본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결혼식이 연달아 거행되고 있어 제대를 가까이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수도원을 나와 옆의 Navy Museum으로 갔다.  포르투갈의 화려한 해상 탐험/무역 역사를 모형배와 함께 전시해 놓은 아주 흥미있는 박물관이었다.  포르투갈은 1498년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처음 개척했고  1535년에는 인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  이 화려한 역사의 길을 닦은 일등공신으로 Henry 왕자 (1394 – 1460) 를 꼽는다.  그의 지도아래 더 멀리 항해할 수 있고 조종하기 쉬운 가벼운 배가 개발되었고 항해 기술도 발달되어 “발견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지 그의 석상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었다.  Jeronimos Monastery의 성당 입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도 그의 석상이 차지하고 있다.

  1589년에 건조된 인도 항해에 쓰인 선박

1502년애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Belem에는 리스본에서 custard tart를 제일 잘 한다고 소문난 bakery가 있다.  내가 Navy Museum을 보고 있는 동안 옆지기와 Anne은 그곳으로 먼저 갔다.  박물관을 보고 가니 기다리는 줄이 질리게 길어서 족히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될 것 같다.  다행이 나는 이미 자리잡고 있는 가족에 합류했다.  Custard tart는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bakery나 딤섬집에서 많이 접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중국 고유의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에 오니 bakery 마다 팔고 있고 쥬스나 커피와 함께 아침으로도 먹는다.  미국에서 도넛이나 베글, 머핀을 보는 것 보다 더 흔하다.  포르투갈이 원조인 것 같다.   이집은 사람이 많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븐에서 금방 나온 따뜻한 tarts를 제공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게 입에서 맛있게 녹는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집의 레서피는 수녀원에서 전수 받았는데  3명만 알고 있단다.  그 세명은 같은 차를 탈 수도 없고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단다.

저녁은 Moorish style로 생선요리를 잘 한다는 곳에서 했다.  특히 여러 가지 대구 요리를 잘 한다고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대구를 소금에 절여 말린 다음 (Bacalhau) 다시 물에 불려 요리에 많이 쓴다.  구이, 찜등 1000가지의 레서피가 있다고 한다.  찜과 채로 썰어 파스타처럼 만든 것을 시켰는데 맛이 훌륭했다.  정어리 구이도 좋았다.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 대구 요리를 먹어 봤는데 그래도 지난 1월 부산 해운대에서 먹은 대구지리의 시원한 맛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포르투갈 레스토랑은 가격도 괜찮은 편이지만 양도 많은 편이다.  Main dish와 appetizer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아져서 주문에 좀 신경을 써야 한다.

 

 

9/18/16 (일요일 Day -4: Lisbon – Fatima)

portugal Fatima

 

일어나 우선 짐을 싸놓고 나가서 아침을 먹고 들어왔다.  크로쌍, custard tart, orange juice, coffee  쎄트를 주문했는데 3유로도 안된다.  종업원 3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서 주문받고, 커피내리고, 써빙하고, 돈받고 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다.  Yelp에는 이 집이 음식은 좋은데 써비스가 느리다는 불평이 많았는데 그사이 요령을 터득한 모양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일반적으로 써비스가 느리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Fatima행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온 것이 다행이다.

리스본에서 파티마까지는 고속버스로 1시간 30분 걸린다.  길 옆의 밭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있었다.  파티마는 20세기에 성모님이 발현한 곳의 하나로 순례객이 많아 호텔,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차분했다.  관광지 분위기는 아니었다.  

파티마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13일에 성모님이 세명의 목동 (Lucia 와 그녀의 사촌 동생들) 에게 발현한 곳이다.  마지막 발현날인 10월 13일에는 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고 하며 그후 10년 동안 2백만의 순례자가 파티마를 방문했다고 한다.  1930년에 교회로 부터 공식 인정이 되었다.  많은 순례자가 다녀 가는데 특히 5월 13일과 10월 13에는 백만에 가까운 순례자가 찾는다고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두세명의 순례자가 수백 미터 거리의 광장을  무릎으로 걸어 성당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불교, 특히 라마교의 순례자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TV에서 본적이 있었지만 기독교 전통에서 그런 순례를 한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 원래부터 있어 왔던 순례 관행인지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아 새로 생긴 관행인지 모르겠다.  Sanctuary of Our Lady of Fatima 와 Basilica of Rosary  두 성당을 둘러보았다.  Sanctuary의 중앙에 모신 현대적 감각의 예수님상에서 우리안에 함께 인간으로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다고 옆지기가 감탄한다.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가  Basilica에서 하는  6시 30분 미사를 참례하기로 했다. 

일요일 저녁 미사였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례했다.  미사후 초를 사서 봉헌했다.  초는 여러가지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사람의 신체 부위를 만든 초도 있었다.  처음 접한 나는 약간 거북했는데 아마도 그 신체 부위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헌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후에 카미노를 걸으며 다른 성당앞에서도 제공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포르투갈에서는 그런 초를 봉헌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행인 것 같다.  옆지기는 그런 초 봉헌의 의미를 신체의 불편한 곳을 모두 주님께 봉헌하여 맡겨서 그 불편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산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싶단다. 

이곳은 봉헌하는 초가 너무 많아, 우리도 한몫 했지만,  그 연기가 상당하다.   오늘 오후에 들렸을 때는 봉헌초를 꽂을 자리가 없어 그냥 던져 놓았는지 붉은 화염에 검은 연기가 가득했었다.  환경 보존을 배려한다면 어떤 대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성당 뒤쪽으로 가다보니 RV Park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RV 가 주차해 있었다.  성당 바로 뒤에는 캠핑장이 있어 텐트도 여기 저기 있었다.  순례자를 위해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역에는 Camino Fatima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미노 싼티아고가 노란 화살표를 쓰고 카미노 파티마는 파란 화살표를 쓴다.  Porto는 Fatima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그곳의 카미노 싼티아고 길에는 두 화살표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저녁을 먹고 돌아 오는 시간이 밤  9시30분에 시작하는 묵주 기도 시간에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이 발현한 곳에 지은 소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한국인 순례자 그룹의 소리도 들렸다.

9월 19일 (월요일 Day -3:  Fatima – Tomar)

아침에 일어나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목동들이 살던 마을로 가는 길을 걸었다.  2km 정도 되는 거리에 적당한 간격으로 십자가의 길 14처를 만들어 놓았다.  혼자나 부부가 같이 걷거나, 신부님과 함께 노래와 기도를 하며 걷는 구룹들이 보였다.  모두 경건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성모님이 발현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예고를 했다는 곳은 천사와 아이들을 하얀 석상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평화롭고 친근감이 있었다.

목동들이 거짓말 한다고 믿은 그곳 행정관이 8월 13일에는 아이들을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대신19일에 발현했다는 곳에는 성모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휠체어를 끌어 주며 걷는 이들의 기도와 노래가 평화로운 정적속에 울려 퍼졌다.  

Fatima에서 하루만 잔 것이 너무 아쉬었다.  적어도 두 밤은 지내며 각 성당에서 행하는 미사에 참례하고 소성당의 묵주 기도에도 참석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9월 중순에 예상되지 않은 뜨거운 날씨였는데 옆지기는 오히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마을을 둘러싼 고요와 평화를 더 강하게 느끼고 성모님의 발현 사실을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Fatima에서 Tomar까지 가는 버스는 시골길을 지나며 손님이 있는 곳마다 섰다.  가는 길에 마을도 많았다.  포르투갈은 언덕이 많아서인지 마을이 대체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집을 언덕 비탈에 짓는 경우가 많아서 앞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2층인 집이 많다.  그런데 지상층을 대부분 지면보다 조금 높게 지어 현관을 계단으로 올라가게 만들어 놓았다.  언덕이 아닌 평지에 지은 집도 지상층을 지면보다 높게 지어 계단으로 올라가서 입구가 있었다.  나중에 스페인에서도 비탈에 지은 집을 보았는데 계단을 만들어 놓은 집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포르투갈의 독특한 주택 양식인 모양이다.

Tomar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Templar 기사단의 성을 보러 갔다. Templar 기사단 (Knights of Templar) 은 12세기 초에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는데 본부를 예루살렘에 두고 교황청의 보호를 받으며 세력이 급속히 확장되었다고 한다.  유럽과 중동에 많은 지부를 설치하고 십자군 전쟁에 앞장서 참전하고 성지 순례자 보호외에 은행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귀족들이 재물을 한 지부에 맡기고 신용장을 받아 다른 지부에서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막강한 군사력과 재력으로 곳곳에 성과 교회를 세웠었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예루살렘을 잃자 세력이 약화되었는데 결정적인 몰락은 14세기 초 불란서 국왕 필립 4세가 Templar 기사단에 지은 엄청난 빚을 갚지 않으려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필립4세는 기사단이 비밀의식에서 배교 행위를 한다고 모함하여 간부들을 처형하였고 자신의 친척인 당시 교황에게 압력을 가해 Templar 기사단을 불법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교황은 기사단원을 모두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하도록 칙령을 내렸다고 한다.

Tomar는 12세기에 포르투갈 Templar 기사단의 첫 총수가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단다.  14세기 초 Templar 기사단이 교회로 부터 불법화되자 포르투갈 지부는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 (Knights of Christ) 으로 바꾸고 문장도 빨간 십자가안에 흰색을 넣어 정화 (purification)를 상징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교황이 받아들여 그리스도 기사단은 19세기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해상왕국이 되도록 이끌은 Henry 왕자가 1417년 부터 1460년 까지 기사단 총수로 있으면서 성을 보수했고 그후 16세기에 대대적으로 증축을 하여 언덕위에 위치한 성은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기사들이 말을 타고 미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팔각형 성당, 정원, 식당, 침실, 난방실, 정교한 창문등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저녁은 숙소 옆의 중국집에서 했다.  인구 20,000의 포르투갈 소도시에 중국집이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기대보다 질도 좋았다.  볶음밥과 면 요리는 훌륭했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을 때 중국 사람들이 이런 조그만 도시까지 와서 살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일 Porto 로 갈 교통편이 불편하다.  기차를 타면 2-3번 갈아 타야하고 5시간 이상이 걸린다.  버스로 다시 Fatima로 가서 급행을 타는 편이 빠르다.  애초에 리스본에서 먼저 이곳으로 온 다음에 Fatima를 경유하여  Porto로 가도록 계획했어야 했다.  차편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다.  Fatima로 돌아가서 Porto로 가기로 했다.

9/20/16 (화요일 Day -2: Tomar – Fatima – Porto)  

Tomar에서 Fatima, 그리고 Fatima에서 Porto 까지의 버스는 순조로이 연결되었다.  Porto에 가까워지니 포도밭이 많아진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집집마다 기르는 케일  galleo도 눈에 많이 띈다.   

Porto는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시 자체의 인구는 300,000이지만 metropolitan 인구는 250만이다.  12 세기에 포르투갈이 독립할 때 이곳에서 나라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Porto는 옛날부터 상업도시였고 포르투갈 해양탐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에는 “돈은 Porto가 벌고, 기도는 Braga가 하고, 공부는 Coimbra가 하고, 걷어 들이기는 Lisbon이 한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고지식하고, 그중에서 특히 Porto 사람들은 물어보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

Porto의 old town은 반경이 2-3km 정도여서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다.  이 old town 전체가 UNESCO 세계 문화 유산이다.  우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선전하는 서점을 들렸다.  Harry Porter 소설에 영감을 준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입장료를 3유로나 받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입장료는 책을 사면 크레딧으로 준단다.  서점은 예쁜 색조와 구조로 되어 있어 독특했다.  입장료 크레딧은 문구나 기념품 구입에는 적용 안 되고 오직 책에만 해당되며 한권에 한사람 입장료만 크레딧을 준다고 한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단한 마켓팅이고 상술이다.

서점을 나와 Clergymen’s Church에 들렸다.  타원형의 성당 내부가 아름다운 곳이다.  성당에 붙어있는 Tower는 높이가 75m로 막힘없이 시내를 볼 수 있어 Porto의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이 성당과 Tower를 지은 건축가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 공이 인정되어 이 성당에 묻히는 영예를 누렸다 한다.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하기로 했다.  맥도날드는 나라마다 지역성을 고려한 메뉴를 개발해서 약간씩 다른 것을 판매한다.  여행중 한번 정도 들려 무엇이 있나 보고 시도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이곳은 주문도 컴퓨터 터치 스크린으로 할 수 있었고 음료수 선택에 맥주나 와인도 있다.  Chicken sandwich도 미국과는 달랐고 Salad dressing도 조그만 일회용 용기에 담아 주었는데 두 모녀가 귀엽다고 즐거워 한다.

Porto의 중앙 기차역은 그 자리에 있던 베네딕트 수도원을 기념하여 Sao Bento 역이라 이름 지어졌다.  내부 벽을 타일로 표현한 포르투갈 독립전쟁 장면이 독특하고 근사했는데 관광객이 승객보다 더 많은것 같았다.

대성당은 언덕위에 성의 역활도 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시내와 Douro 강이 잘 보였다.  대성당에서 순례자 패스포드에 도장을 받았다.

강가로 내려오면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몰려 있다.  마음에 두고 찾아간 곳들은 이미 예약이 모두 되었다고 한다.  화요일이어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빗나갔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로컬도 많이 이용하는것 같다.  저녁을 먹고 강을 따라 걸었다.  낮에 보는 강변 경치도 좋았지만 밤의 모습은 다른 멋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마침 Funicular라는 cable railway가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  편안하게 언덕 위까지 올 수 있었다.  2.5유로가 아깝지 않았다.

9/21/16 (수요일 Day -1: Porto)

옆지기는 오늘 파리로 가서 내일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Anne은 내일부터 걷기 시작한다.  숙소 (게스트 하우스) 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옆지기의 짐을 싸 놓은 다음 리스본 재래시장에 갔다.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관광객을 위한 gift shop이 많았다.  그래도 야채가게, 생선가게, nursery들이 있어 시장 기분은 내 주었고 소규모 가게의 생선인데도 반짝 반짝 싱싱한 것에 옆지기가 감탄이었다.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거리의 상점에서 파는 가격의 반 값에 살 수 있었다.  시장을 나와 St. Francisco 성당을 들렀다.  지금은 성당 기능이 없는 박물관으로 4유로의 입장료를 받았다.  바로크 스타일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내부가 특별했다.

St. Francisco 성당 가까이에 증권거래소가 있다.  안마당과 아랍룸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볼만하다고 했지만 항상 넉넉히 시간을 갖고 움직여야하는 모녀가 공항 갈 시간이 가까워 온다고 조바심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Henry 왕자 동상이 서있는 앞 광장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Nespresso 자판기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는데 decaf  커피도 있어 더 반가웠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Uber를 이용했다.  차도 금방 왔고 요금도 4유로 미만으로 아주 편리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도 Uber를 이용했는데  20km가 넘는 거리를 20유로 미만으로 이용했으니 역시 편리했다.  리스본에서도 한번 이용해 봤는데 운전기사와 영어로 소통도 잘 되고 바가지를 쓸 염려도 없고 요금도 저렴해서 좋았다.  교통이 번잡하지 않아 20분만에 도착했다.  Porto 공항은 현대식 건물로 깨끗했다.  지은지 얼마 안되는 것 같았다.  터미날로 들어가는 입구가 중앙에 하나밖에 없는데도 줄이 잘 움직였다. 

옆지기 배웅후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시내로 나와 아예 다리를 건너 Monastery of Serra do Pilar로 갔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전략적 위치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old town 의 모습이 새롭다.  Monastery가 있는 언덕에서 아래 강가로는 cable car를 운행했다.  Old town의 건너편인 이쪽 강가에는 와인 시음장이 많다고 한다.  포르투갈 와인은 달달한 디저트 와인인 Port wine만 알고 있었는데 와보니 여러 종류가 있다.  지금까지 마신 포르투갈 와인들은 모두 입에 잘 맞았다. 

어제 저녁에 덕을 보았던 Funicular가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다시한번 Funicular가 고마웠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와 숙소로 돌아왔다.  Old town에서 숙소로 가려면 조그만 공원을 거쳐간다.  오후에는 50대 이후로 보이는 남자들이 많이 나와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구경꾼이 많은 테이블은 아마도 걸린 판이 커서인 것 같다.  공원에 나와 소일하는 젊은 늙은이들을 보니 이곳도 일자리 문제가 어려운 것 같다. 

저녁은 숙소에서 소개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포르투갈 가정요리를 잘 한다고 소개해 주었다.  정말 주방은 할머니 같은 분이 맡고 있고 hall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 주관하고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메뉴에 “포르투 내장탕 (Tripas a moda do Porto)” 이 있어 주문했다.  포르투 사람들은 내장만 먹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단다.  한참 해양 정복을 하던 시기에 고기는 모두 떠나는  선박에 실어 보내고 시민들은 내장만 먹었기 때문에 내장탕은 이곳의 별식이란다.  곱창, 천엽, 귀, 허파, 간등을 콩과 양배추를 넣고 토마도 국물에 끓였는데 구수했다.  매운 양념이 아닌 것이 오히려 내장 고유의 맛을 잘 살리는 것 같다.  내장탕을 좋아하는 옆지기가 없어 아쉬웠다.

음식이 나오기전에 먼저 빵을 가져다 주었는데 처음보는 빵이었다.  웨이터에게 이것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더니 “빵이다.  포르투갈의 특별한 빵이다.” 라고 대답한다.  웨이터는 심각하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아 전혀 장난기나 무례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Porto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글자 그대로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경험을 해 본 경우였다.   우리가  “이 빵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어야 했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빵 이름이 나왔다 “Broa de Avintes”.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이었다.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끝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3편이 계속 연재 됩니다.

교우 이야기 보내주실곳 : [email protected] (홍보부)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 김명환 안드레아

 

2017 부활절, 성삼일 미사 전례, 빛의 예식, 주님 수난예식, 유아 영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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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순특강 – 최기홍 바르톨로메오 신부 주제 : 나는 OO이다.#2 – 4/9/2017

 

2017 사순특강 – 최기홍 바르톨로메오 신부, 주제 : 나는 ____이다. 2

주님수난성지주일(4/9/2017)을 맞아 전신자들이 성지를 들고 성당 주변 62가와 63가를 한 바퀴 돌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수난예고를 상징하는 성지주일 행사를 가졌다. 교중미사 후 전신자들은 맛있는 김치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뒤, 교회 안팎을 1시간 정도 청소하였다. 청소 후 이어진 특강에서 최기홍 신부는 우리를 방황/혼란케 하는 것은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이며,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순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언젠가 사라질 것들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보라고 했다. 특강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매일 읽고 육화시켜야 한다. 또한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성화시켜야 하고, 나와 가족을, 이웃을 성화시켜야 한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 13)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로라 윌킨스는 위의 필리피서의 말씀을 입으로 계속 암송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한 결과, 부상을 딛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을 믿지 않기에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는다.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텅 빈 공갈빵 같기 때문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한다는 이유로 주일미사에 나오기 힘들어 하면, 미사에 빠져도 묵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공부도 잘하게 되고 올바른 길로 가게 된다.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은 공부도 잘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 하느님을 무기력한 하느님으로 만들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용서 받은 이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두 가지의 특은을 입는데, 그것은 바로 원죄와 지금까지 지은 죄가 용서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죄도 용서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하고, 과거의 아픔(죄)에서 나와야 한다. 부활은 죄의식 속에 죽어가는 우리를 살려내는 것이다. 죄 속에서 나와야 한다.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신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사람이다. 우리는 “성령의 궁전”이다. 일치, 치유, 기쁘게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숨겨진, 잊어버리고 있던 성령의 은사를 다시 찾아야 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 14)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성당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두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난의 순간에 제자들이 떠난 것과 같이, 우리도 떠날 것인가? 고통과 수난 없이는 부활이 없다. 희생 없이는 사랑은 완결되지 않는다.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선택 받았고, 용서 받았으며, 길을 가고 있기에, 축복 받은 이들이다. “나는 그리스도 인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기사: 홍보부 천종욱 다니엘) / Editor: 송일란 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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